위의 기사에 달린 댓글을 캡처해 올려본다. 검사동일체 원칙? 완전히 군대처럼 계급장으로 구분하는 계급사회가 아닌가. 사실 이런 경직된 관행은 일찌감치 폐기처분해야 했다. 아마도 군인들이 정치하면서 생겨난 조직의 관행이 아닐까 추정한다. 조폭도 아니고... 독재자는 사라졌으나 독재시대에 생겨난 규칙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2009.7.26.밤에
요즘 공권력이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과거 독재시대에나 보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그 해결책을 요즘 올라오는 댓글에서 발견한다. 해결책은 아주 간단하다. 선거에서 저들을 안찍으면 저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권력이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이 독재시대와 똑같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우리사회 구조다. 이 구조란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맹목적으로 지켜지는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선 단죄가 필요하다. 국민이 주인인데도 아직까지 머슴으로 착각하는 공권력의 수술이 필요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누가 그런 헛소리를 했는가? 단지 외세에 의해서 헌법에 그렇게 쓰여져 있을 뿐이다. 우리가 죽기살기로 얻어낸 사회제도가 아니다.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가 왜곡된 이유다. 2009.7.26.일요일 밤에
먹고살기 위해선 일을 해야하나, 그 일은 민주주의와 상관없다. 경찰이나 검찰같은 공권력이 남용되는 것도 이 때문인 듯.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들은 위에서 명령했기에 따랐을 뿐이다. 시키면 따라야 한다. 그 명령의 옳고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설사 그 명령이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여도 괜찮다. 우리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진 [인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권위원회]를 폐지하려다 축소한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조용했다. 물론 일부는 반대했지만, 그 뿐이었다. [인권위원회]는 그렇게 축소되었다. 어제와 그제의 [KBS국민대토론 통합의 길을 찾는다]를 봤다. 진보와 보수로 분열된 우리사회를 통합시키려는 노력이었다. 분명하게 우리사회속에는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우선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필요해보인다. 통합? 그것은 그후의 문제가 아닐까? 국가운영 체계로 인한 혼란으로 이해한다. 이 땅의 주인은 누군가?
헌법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로 돌아간다. 권력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아, 단지 선거철에만 잠시 고개를 숙일 뿐이다. 참, 최근 10년동안 국민들은 주인대접을 받았었다. 이때 인권 위원회란 조직이 만들어졌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다. 마땅히 그 가치를 알 리가 없다. 우리사회에 인권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지 주어졌으니까.
물론 기득권은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한다. 맞다.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잃어버린 10년]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기득권의 입장에 불과하다. 이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은 IMF가 출발점이다. 우리사회는 IMF가 터지기 전까지 수평적 정권교체는 없었다. 정권을 철저히 사유화했다. 오늘날의 기득권은 IMF를 불러온 장본인들이다. 머슴을 주인으로 섬기고, 주인을 머슴으로 섬기다 IMF를 맞았다. 민주주의 문제다.
과거 조선시대의 사회질서가 현재 민주주의와 만났다. 성격이 너무 다르다. 과거 주인노릇하던 권력은 오늘날 머슴노릇하는 것이 맞다. 이게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주인은 오늘날도 계속해서 주인노릇하려고 한다. 그래서 상식이 무너진 사회가 된 셈이다. 우리사회의 전체적인 구조도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즉 머슴을 주인으로 섬기는 구조다. 그러므로 본래 주인인 국민들은 계속해서 머슴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2009.7.19.오후에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과거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가지고 간다. 검사와 법관은 공권력으로 국가의 기강을 세우며 사회정의를 실현한다. 허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국민은 머슴취급받고, 오히려 머슴들이 주인노릇한다. 국민이 주인이란 교육을 안받았으며 심지어는 언론과 지식인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사회가 민주주의란 제도를 스스로 이뤄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에도 일등국민과 이등국민, 3등국민이 존재한다. 민주사회를 이루기 위해선 부득이하게 그에 맞는 차별이 이뤄져야 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과거 권력을 주인으로 모시던 과잉충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따라서 공권력을 악용하며 여전히 권력을 주인으로 모시는 자들에 대한 단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단죄가 없다면 제2, 제3의 노무현 전대통령같은 불행은 반복될 것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면 우리사회 구조가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죄의식이 전혀 없다면 그것이 죄라는 생각조차 안든다. 우리사회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려면 권력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에 대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다. 그 단죄가 없다면 국민은 여전히 머슴대접을 받을 것이고, 머슴인 권력이 주인노릇할테니까. 2009.7.15.새벽에
위의 동영상을 보면 눈치보느라 바쁜 직장인의 애환을 표현한다. 확실히 10년 전과 달라진게 없는 사회분위기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절실함이 없기 때문인 듯싶다. 절실함을 느낄려면 고통스런 시간을 맛봐야 한다. 그리고 이 절박함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 과정을 생략했다. 바로 여기서 [무임승차]가 등장한다. 즉 자기생각은 변화되지 않고 좋아진 세상에 승차한 것.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여기서 대가는 조선시대와 민주주의의 연결을 끊기 위한 노력이다. 민주주의는 피로써 성장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몇차례 피를 흘린 역사가 있다. 4.19와 5.18, 6.10 항쟁 등이 있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바로 내부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조중동으로 불리는 언론은 그 태생이 조선시대에 있다. 조선시대에 인권이란 개념이 있었나? 헌데 지금은 있다. [인권]이 있고 없음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을 우린 욕한다. 헌데 왜 욕하는가? 따져본 적이 있는가? 난 정치인들을 절대 욕하지 않는다. 그럴 생각도 없다. 국민의 손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욕할려면 그런 정치인보단 그를 선택한 국민을 탓해야 옳을 것이다. 다 장난일 뿐이다. 절대 정치인들을 탓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을 정치인에게만 의존하는 건 조선시대 가치관이다. 그런 언론이 있어 현실은 21세기지만, 정신은 조선시대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2009.7.10.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