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내용이다. 우리사회의 현재 모습과 많이 비교된다. 거리는 넘쳐나는 정보들로 넘쳐난다. 변화의 바람이 없던 시대에서 변화의 바람이 거센 현재로 왔다. 허나 우리의 정신과 생각은 그 변화에 맞춰 따라가지 못한다. 난 누구며 넌 누구인가? 도대체 왜 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보통 이러한 자아 정체성은 사춘기를 거치며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 과정마저 올바로 거치지 않은 듯싶다. 워낙 급격한 변화라.
변화는 움직임이다. 이 움직임은 사물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이것을 안과 바깥의 시각에서 보자. 먼저 변화없는 관점이다. 움직임은 그 자체가 재앙이다. 변화의 안에서 보면 변화가 이해되지 않는다. 왜?? 자신은 과거에 변화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번엔 바깥에서 보자. 이쪽에선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기는 움직이는데 저들은 안움직이니까. 우리사회 진보와 보수의 대립적인 상황.
자, 무엇이 문제일까? 진보가 문제일까, 아니면 보수가 문제일까. 진보와 보수에서 문 제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곳에서 찾는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건강한 사회라면 당연한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구조다. 허나 우린 이것을 비정상적으로 취급한다. 즉 우리사회의 의사소통구조에 문제가 있다. 왜곡되고 조작되며 과장된 사실도 사실로 믿는 우리사회다. 누구에 의해? 조중동같은 친일언론에 의해서. 2009.9.26.밤에
삼성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 그것이 단 하나의 불매 이유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신영철씨 꼴난다. 머리는 있으나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이 연장된 것. 기본권을 박탈하는 독재자에게 계속해서 투표한다면 그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 민주시민의 기본이 안돼 있으니까. 세상 좋아졌다. 아직도 조중동이란 신문이 발행되나 보다. 단지 일자리가 일요한 거겠지. 2009.9.24.밤에
최근에 캡처한 내용들이다. [대다수 바보들에 끌려가는 우리사회라고 지적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우리사회를 가동시키는 원리니까. 헌데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내용들이다. 그런데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는 셈이다.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하니 친일파가 득세한다. 역사에서 배우지를 못하니 똑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이것을 정치적 보복으로 이해하셨던 듯싶다. 허나 이것은 정치적인 보복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단죄 없이 현재의 잘못이 시정되겠는가? 국민알기를 일제시대와 똑같이 통제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머슴취급한다. 노무현의 죽음을 보면서 정권만 바뀐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음을 알았다. 국민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그것만이 해결책이다. 문제는 외부에 있지 않다. 우리사회 내부에 문제가 있다. 내부의 적이다.
먹고는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무슨일이든 해야 한다. 그것이 [인권]을 침해하고 훼손 하더라도... 왜? 그 [인권]은 우리들 스스로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므로.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또 알아도 알려주지 않는다. 수구기득권세력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우리사회의 [도덕적 타락]? 당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주인이길 바라는 국민들이 계속해서 머슴취급했던 정치인을 뽑아주고 있다. 선거권을 제한해야 한다. 2009.9.23.밤에
아직도 쌍팔년도의 가치관이 존재하고 있다. 위의 댓글은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저 기사를 쓴 기자의 생각은 19세기에 머물렀다. 반면 그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상반된 의견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차이다. 즉 19세기에서 현재까지 우리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합의가 없다. 그래서 19세기 가치관으로 현재를 설명하려니 사람들이 납득하지 않는 것이다. 왜? 지금은 21세기니까. 매우 혼란스럽다.
누구는 여전히 19세기 가치관으로 생각한다. 우리에겐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도 괜찮은 시절이 있었다. 국가가 치마길이를 단속하던 시대 말이다. 국민의 인권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했다. 그러면서 정권이 바뀐다. IMF위기의 고통과 함께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대통령이 집권. 이때 인권의 개념이 도입된다. 기득권세력의 집요한 반격으로 다시 정권교체.
그리고 다시 19세기와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국가가 다시 국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다시 과거의 독재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언론들은 조용하다. 사실 우리사회의 대다수 언론들은 19세기에서 의식이 정지됐다. 그래서 기사는 쓰는데 그 기사의 옳고그름은 분별하지 못한다. 판단도 못한다. 언론이 현재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다. 과거 냉전시대와 다양성의 현재를 혼동하는 탓이다. 혼란스럽겠지. 2009.9.20.밤에
올해 초에 김기호씨를 물러나게 하는데 동참했다. 그리고 새로 교체됐다. 허나 이번에 동일한 비리가 일어났다. 자,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만 바뀔 뿐 부정부패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산 넘어 산이다. 이러한 가정도 가능하다. 그 비리를 일으키기 위해서 앞사람을 쫓아냈다고... 문제는 사람이 아니다. 누가 그 자리에 앉더라도 비리를 일으키는 구조다. 따라서 그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런 복지비리는 생각이 빈곤한 탓이다.
중앙정부와 시로부터 자금을 받는다. 또 민간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는다. 이 돈을 투명하게 운영한다는 전제하에... 허나 이 믿음이 깨졌다. 우리사회의 구조는 투명한 조직운영이 불가능한 구조다. 다수가 도덕 불감증에 빠져있다. 부도덕한 행동을 해도 죄의식이 전혀 없다. 그런 가운데 인간관계가 이뤄진다. 공과 사의 구분도 없다. 그런 나라를 운영하다 맞은게 IMF위기였다. 우린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요령만 배웠다.
복지에 투입되는 돈은 막대하다. 자, 이 돈은 어떻게 나에게 오는가? 국민들한테 걷은 세금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돈의 불투명한 운영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 돈의 흐름은 겉으론 안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건 다만 돈일 뿐이다. 생각이 없다면 보이는 돈에만 관심을 갖는다. 과거 한솥밥을 먹는다고 쉬쉬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회는 거대한 조폭사회다. 서로의 잘못을 덮어준다. 이래선 우리사회에 미래가 없다. 2009.9.19.밤에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글을 봤다. [위기는 정신적인 혼란이다.] 이 말을 우리사회에다 맞춘다면 언론은 주범이 된다. 왜? 정신적인 혼란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 가치가 명확한 사실전달이 언론의 책임이라면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익숙함과 낯설음이 교차하며 충돌한다. 그러나 아직은 낯설음이 익숙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난 지금도 저들이 전하는 내용은 믿지 않는다. 저들의 이중성을 이미 봤으니까.
오늘날 우리사회의 어수선함을 간단히 정리하면 낯설음과 익숙함의 충돌. 이러한 충돌은 일찌기 없었다. 위에 링크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라. 서로가 믿는 세상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일제시대 탄생한 언론이 전하는 사실속엔 [인권]이 있을리 없다. 그들은 다만 배운대로 쓸 뿐이다. 그것이 먹고살기 위한 방법이므로.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저 기사를 사실로 믿고쓰는 기자가 문제이거나, 그것을 문제삼는 대중이 문제이거나. 2009.9.17.밤에
오늘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아는 형이 강사님께 나를 일러바친다. [쟤는 컴퓨터에 대해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늘 수업시간에... 난 그 말을 들으니 과거의 나와 비교가 되었다. 왜? 과거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걸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은 잘못됐음을 안다. 그래서 지금은 도와주지 않는다. 알아도 알려주지 않는다. 야속하겠지만. 과거의 내 어리석은 행동이 잘못됐음을 아니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내가 도와준다. 이건 도와주는 사람의 생각이다. 반대로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은 사정이 달라지게 된다. 사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댓가를 치른다.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쉽게 그를 도와주면 그 사람은 대가를 치르지 않는 셈이다. 그러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더이상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다. 즉 노력할 이유가 없어진다. 내 도움은 그의 의지를 죽이는 행동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대통령이 놓친 것도 바로 이것이다. 국민들의 아픔을 헤아려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냐? 국민들 스스로가 직접 보고 경험해봐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물론 이 방법은 시간이 더 걸린다. 우린 인권이란 가치를 얻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너무 쉽게 얻었다. 현재를 보라. 과거 독재시대에나 보던 모습이 태연히 일어나도 너무 조용하다. 물론 속에선 끓겠지만. 2009.9.17.밤에
위에 보면 정권바뀔 때마다 혼란스럽다는 댓글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됐다. 우리사회가 어떻게 정권교체가 이뤄졌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정권교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때는 1997년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때까지 수평적 정권교체는 없었다. 1997년11월 초인가에 IMF가 터졌다. 우리경제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IMF를 졸업하게 했다. 허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심지어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던 노무현 전대통령은 자살에 이른다. 노무현의 죽음에서 서민의 이익만을 대변해야 죽음 뿐이란 사실을 일깨워준다. 원래 이 땅은 가진 사람들 위주로 돌아갔던 사회였다. 현재를 보라. 도덕적으로 타락한 일들이 벌어져도 너무 조용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런 일들은 벌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다. 이것을 차단해야 한다. 세상 더럽다고 욕하지도 마라.
조선시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서민으로 태어난 그댄 이미 죄인이다. 어디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가? 예전같으면 그댄 남산으로 끌려가야 맞다. 보통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했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스스로를 탓해야 할 것이다. 이제 서민들의 잔치는 끝났다. 이제부턴 피똥쌀 일만 남았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치명적인 실수는 서민들을 너무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잘해줄 필요없다. 2009.9.14.밤에
현재 우리사회 내부에는 두종류의 국민들이 있다. 정치적 어수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예전에 TV토론같은 걸 보면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한쪽은 권력이 주인노릇하는 걸 너무도 당연시 받아들인다. 반면에 다른 한쪽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근 10년동안에 이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크게 늘어났다. 쉽게 말한다면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과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
민주주의란 사회제도를 우리들 스스로가 일궈내지 못한 혼란이다. 만약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으켜 세웠다면 이러한 내부적 갈등은 훨씬 덜할 것. 최근 큰 변화가 우리사회에서 일어났다. 바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인권개념의 확산. 헌법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즉 국민이 주인이라고 정의한다. 현실은 국민이 머슴노름했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정권교체 후 국민이 주인노릇을 잠깐했다.
보통 유권자라고 말한다. 유권자[有權者]. 권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 권리행사는 투표로 이어진다. 국민이 주인대접받으려면 주인노릇을 똑바로 해야 한다. 허나 국민의 권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국민이 섞여있다. 그래서 어수선한 것이다. 주인노릇을 못하는 국민이 우리사회엔 많다. 그래서 감정에따라 선거를 한다. 지역감정이나 부추긴 언론들이다. 최근 10년동안 국민이 주인대접받았다. 그리고 다시 머슴대접받는다. 2009.9.12.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