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옥션에서 다이어리를 구경하다 발견했다. 결국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 부족한 것. 그러니 시간 이 없다고 떠들 필요가 없다. 시간은 제한적인데 그것을 잘 관리 하는 기술이 필요하단 뜻이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무는 시기이다. 시간은 유유히 흘러간다. 난 그 위를 잠시동안 머물렀다 떠가고. 2010.10.30.오후에
어제였다. 복지관에서 돌아오던 차 안에 동승한 아주머니가 불만 을 말했다. 그래서 들어봤다. 자신을 차량지원하는 분에 대한 불 만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분이 누구냐고? 그러자 알려고 하지 말란다. 같은 교회다니는 처지라며 감싸는 것이 아닌가. 그 래서 내가 그랬다. 그러면 그분에 대한 불만도 말하지 말라고.
누군지 알아야 개선할 것이다. 헌데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 그러 면서 그분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다. 즉 같은 교인이라 얼굴 붉 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불이익을 감당하겠다는 뜻. 그러니 불만을 말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불이익을 감당하겠다는 뜻이니까. 우린 [우리]라는 거짓된 공동체에 집단으로 세뇌됐다.
우린 서로서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비판이 없으니 개선되지 도 않는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보니까 이런 캠페인도 하더구만... 아, 내가 그 동영상을 캡처를 받아 밑에다가 올렸을 것이다. 이들을 악플러라고 말한다. 물론 선의의 피해자도 있을 것. 우리사회도 그 아주머니와 똑같다.
추가-비판않고 거짓된 공동체의식을 끌고온 모습이 현재다. 만족 스러운가? 머슴이 계속 주인노릇할 수 있는 이유다. 2010.10.30.오후에
오늘 다음의 사회면에 올라온 기사다. SBS와 MBC의 뉴스내용. 뉴 스내용이 깊이있게 들어가지 못한다. 단순보도에 그친다. 그리고 끝난다. 결국 보나 마나다. 아니, 차라리 안 본다면 모를테니 차 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저 방송 관계자들도 먹고살아야하니 뭔가 일해야 한다. 그러니 보나 마나한 내용을 뉴스라고 떠들지. 2010.10.29.밤에
주인에겐 주인대접을, 노예에겐 노예대접을...
국민 중에도 주인노릇하는 국민들과 노예노릇하는 국민들이 있다. 복지는 주인노릇하는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서비스다. 눈치나 보며 노예노릇하는 국민에겐 복지도 사치다. 앞으로 노예노릇하는 국민에겐 노예대접을 해야 한다. 또 주인노릇하는 국민에겐 주인대접해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나라다. 헌데 우린 이 둘이 서로 섞여 있다. 장애인이라고 다 주인노릇하는 건 아니다. 노예노릇하는 장애인에게 복지서비스는 낭비일 뿐이다.
추가-위의 글은 좀 전에 장애인신문에다 올린 댓글이다. 노예노릇하는 국민에게도 과연 주인대접을 해줘야 할까?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주인노릇하는 국민에겐 주인대접을, 노예노릇하는 국민에겐 노예대접을... 그것이 앞으로 이 나라가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010.10.29.밤에
어제 [사냥이 끝난 사냥개는 제거의 대상일 뿐]이란 글을 아래에 올렸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검찰이 누군가? 역사적으로 보면 검찰은 개노릇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사냥개가 되 었다. 독재시대에는 독재자의 사냥개노릇을 했다. 노무현 전대통 령은 검사들과 대화를 재임시절 시도하셨다. 그것은 잘못이었다.
저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사냥개 노릇을 하 였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고작해야 월급쟁이에 불과하다. 대화의 대상이 아니다. 고질적이며 폐쇄적 인 저들의 관행이 하루아침에 개선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 다. 저들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나? 죄의식조차도 없다.
저들은 그저 월급쟁이에 불과하다. 물론 그중에는 투철한 의식을 가진 검사도 있을 것이다. 검사가 3500명쯤 되는 걸로 기억한다. 좋은 사람이 왜 없겠나? 허나 시대의 사냥개 노릇을 너무 오랫동 안 해왔다. 그동안 악역을 도맡아 왔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이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제도적 견제장치로 통제해야 한다. 2010.10.28.밤에
그동안 우리사회는 머슴이 주인노릇 했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지금까지 그렇다. 대신 주인인 국민은 머슴대접 받는다. 이과정이 잠시 뒤바뀌는 시기가 있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대통 이 재임하던 시기 말이다. 이 시기에 [인권]의 가치가 뿌리를 내 렸다. 스스로 얻은 인권이 아니다. 따라서 생각이 왜곡될 수밖에.
너무 쉽게 얻었다. 그러므로 그 가치를 알 수 없다. 인권에 대한 생각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 우리사회는 개발독재를 용납했다. 독재는 머슴이 주인노릇하는 구조다. 그러한 구조에서 현재까지 왔다. 즉 계속해서 지금까지 머슴이 주인노릇하는 것이 다. 잠깐 국민이 주인노릇했었다. 허나 다시 머슴노릇을 하란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참과 거짓이 뒤섞였다. 옳고 그름의 기 준이 사라졌다. 오랜 시간 국민이 머슴노릇 하였다. 그러다 갑자 기 국민이 주인인 제도를 수입한다. 어수선해질 수밖에. 이런 상 황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선택할까? 국민에게 주인대접을 안 하는 데 국민들이 머슴대접받으려 할까?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다. 2010.10.27.밤에